

2020년 여름, 서울 코엑스몰에 길게 늘어선 300명의 줄. 그 시작은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 LA에서 온 샌드위치 브랜드 에그슬럿(Eggslut)이었습니다. ‘달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이름으로 등장한 이 브랜드는, 달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독특한 샌드위치와 햄버거로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저도 방문해서 꽤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블로그글로 정리를 시작했는데 찾아보니 2024년 11월, 마지막 매장인 코엑스점이 문을 닫으며 한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감성을 그대로 – 프리미엄 브런치 버거의 등장
에그슬럿은 기본적으로 달걀을 중심에 둔 프리미엄 샌드위치를 제공합니다. 대표 메뉴인 ‘페어팩스’는 부드러운 스크램블 에그, 캐러멜라이즈드 어니언, 체다치즈, 칠리 소스, 부드러운 브리오슈 번이 어우러진 메뉴입니다. 강남점 방문 당시 주문한 메뉴는 스모키 풀드 포크 샌드위치, 샐러드, 해시브라운, 오렌지주스로 구성된 간단한 아침 식사 세트였습니다.
샌드위치에서 느껴지는 고기의 질감은 다진 패티가 아닌, 찢은 돼지고기 스타일로 미국식 풀드 포크 특유의 훈연된 풍미가 살아 있었습니다. 여기에 부드러운 달걀과 어울려 상당히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었죠. 샐러드는 루꼴라와 치즈 조합으로 가볍게 곁들일 수 있었고, 해시브라운은 개인적으로는 맥도날드 스타일에 익숙해 다소 아쉽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음식 퀄리티 자체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달걀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평범한 패스트푸드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며, 브런치처럼 여유로운 한 끼를 즐기기에 적합한 메뉴 구성이었습니다.
매장 내부는 미국 본사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넓은 공간에 노란색과 검정색을 주요 포인트로 사용한 디자인,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주방과 캐주얼한 테이블 배치, 그리고 계란을 형상화한 그래픽 아트 등은 음식만큼이나 시각적인 만족감을 높였습니다.
메뉴판은 영어 중심이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었지만, 한국어 메뉴판도 따로 존재해 약간의 적응 시간이 지나면 큰 문제 없이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직원들이 친절하게 메뉴를 설명해주며 첫 방문객들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에그슬럿의 브랜드 전략 – 미국식 단품 판매의 한계
에그슬럿은 셰프 앨빈 카일란이 창업한 브랜드로, 본래 LA의 푸드트럭에서 시작된 샌드위치 전문점입니다. 미국에서도 '고급 달걀 샌드위치'라는 콘셉트로 브런치층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는 SPC가 독점 운영권을 들여와 2020년 코엑스점을 시작으로 더현대 서울, 강남, 한남, 분당까지 총 5개 정규 매장과 양양·부산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이 브랜드는 단품 가격이 높은 구조였습니다. 샌드위치 단품이 7천 원대 중후반에서 시작하며, 음료나 사이드 메뉴를 함께 구성하면 1인 세트 기준으로 1만5천~2만 원까지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이는 고기 햄버거보다도 비싼 계란 햄버거라는 인식을 만들었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브런치 카페에서 먹는 식사”라는 포지셔닝이 오히려 진입 장벽을 높였습니다.
특히 세트 구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옐로 먼데이’ 이벤트(월요일 세트 할인 15%)처럼 일시적인 할인 이벤트에 의존하는 방식도 국내 소비 패턴과는 맞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빠르게 소비하고 싶은 고객 입장에서는 계산과 구성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폐업과 철수 – 에그슬럿의 한국 실패 이유
2020년 7월에 문을 연 이후, 코엑스점은 한때 하루 1,000명을 웃도는 방문객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팬데믹과 외식 물가 상승, 그리고 브랜드 포지셔닝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순차적으로 폐업이 진행되었습니다.
2022년 2월 강남점이 폐점된 후 신규 매장 출점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2023년 분당에 매장을 추가하며 반등을 시도했으나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결국 2024년 11월 30일, 마지막 남은 코엑스점이 폐업하면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소비자들은 “달걀 하나 올려놓은 샌드위치를 고기 버거보다 비싸게 받았으니 4년을 버틴 게 기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며, 브랜드의 과도한 고급화 전략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점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에그슬럿은 확실히 맛과 매장 분위기에서 미국식 브런치의 감성과 고급화를 잘 구현해낸 브랜드였습니다. 특히 부드러운 계란과 브리오슈 번, 그리고 다양한 소스가 어우러진 시그니처 메뉴들은 한국에서도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뉴 가격 구조와 소비자 기대치 간의 괴리, 잦은 팝업 운영에 비해 적은 신메뉴 개발, SPC의 일관되지 못한 확장 전략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며 결국 철수로 이어졌습니다. 고급 브런치 샌드위치라는 신시장을 연 시도는 의미 있었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안착시키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분들의 글을 찾아보니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먹은 에그슬럿이 더 맛있다고 합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에그슬럿을 맛볼 수 없지만, 미국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면 간단한 브런치로 한번 방문해 보면 어떨까요?